여기서 시즈미 키요이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고유어와 일본의 고유어는 어근으로 볼 때 똑같은 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토대로, 같은 어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일단 500개 정도가 같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후 1년 정도 지난 후에 5000개 정도의 같은 어근을 찾아냈습니다.
5천개의 공통어근을 찾아낸 결과, 게다가 그 공통어근이 매일의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이른바 기초어휘의 범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언어학적으로 두 언어는 같은 언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시미즈 키요시 교수 박명미 교수가 시미즈 교수를 만난 것은 1994년 일본 구마모토 대학 언어학과에서였다. 시미즈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의 아프리카 연구소에서 18년간 비교언어학을 하고 귀국했는데, 당시 대학원생으로 있었던 박영미 교수를 만나면서, 일본어의 뿌리찾기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시미즈 키요시·박명미 공저 , 『아나타는 한국인』에서. 저자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한국어의 변천과정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반도한어’와‘열도한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열도한어 일본어가 한국어와 많이 닮았다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다. 특히 일본말 중에는 제주도 방언과 거의 같은 것이 있고, 일본어의 억양은 한국의 경상도 언어의 억양과 비슷하다고들 말한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한국인이 일본에 건너가 문물을 전해주었다든가, 고대 일본의 지배층이 한국인이었다는 견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학자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들도 일본인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며, 일본어의 뿌리는 바로 한국어라고 말한다. 게다가 인류학자들이 말하기를, 규슈지방의 일본인 유전자는 한국인과 유사하다는 DNA분석 소견도 있다.
이 모든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한반도야말로 일본의 ‘자궁’이었으며 일본이라는 식민지의 ‘모국’이었다는 표현이 가히 과장되어 보이지 않는다.
시미즈 교수와 박영미 교수는 열도한어는 반도한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반도한어는 아주 오랜 옛날의 대륙한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대륙에서 있었던 언어의 이동경로와 흡사하다. 유럽대륙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이 게르만어를 가지고 영국으로 들어간 것과 똑같은 일이 이곳 아시아 동쪽끝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기원전 4세기경부터 일본열도로 이주하기 시작한 한민족이 언어를 가지고 일본열도로 들어감으로써 오늘날 일본어의 모태가 되었다는 얘기다.
시미즈 박사는, 고대 이집트 언어가 현대 아프리카 언어와 같은 계통이며, 영어가 독일어의 자매어로서 게르만어의 하나인 것처럼,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은 언어라고 말한다.
농사법의 전파 경로가 곧 언어의 길 일본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마크 허드슨 박사는 일본어의 원형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농경인의 언어라고 확신한다.(아래사진)
마크 허드슨 박사 그는 농사가 퍼져나간 길이 바로 언어의 길이라고 말한다(훗카이도대학 북방문화과 강사, 『정체성의 몰락 일본열도인의 기원』의 저자, (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
“일본어의 기원은 기본적으로 야요이 문화의 기원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언어라 할 수 있는 신일본어는 야요이인이 가져온 문화와 함께 한반도에서 동시에 도착한 것입니다. 일본어는 바로 그 시기에 한반도에서 도착한 농경집단에서 유래되어 북부, 남부, 오키나와의 순서로 확산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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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일본의 신석기 시대를 조몬시대라 하는데, 이 다음에 이어진 시대가 야요이 시대(BC400~AD300년)이다. 일본에서는 야요이인이야말로 오늘날 일본들의 직접적인 선조이며, 본격적인 고대국가를 형성한 사람들로 공인되어 있다.]
인류역사의 변화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농경문화의 확대였다. 농경의 중심지가 새로운 지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에 있던 원시적인 수렵채집단계의 사람들을 대체해갔다. 일본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그는 생각한다.
농경민들은 안정된 농사로 인구가 늘자,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자신들의 농사기술과 언어를 가지고 이동했다. 한반도 농경인도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언어를 뿌리내렸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인식은 야요이인*은 조몽인과는 전혀 다른 이주민이었다는 일본의 인류학자 나카하시 다카히로 교수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고대 인골 연구로 명성이 높은 규슈대학에는 5천구에 달하는 고대 인골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들의 유전자가 한국인의 유전자와 거의 같다고 한다.
인도와 유럽으로 퍼진 언어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농사를 짓던 농경인들의 언어였으며, 논농사와 함께 한반도 농경인의 언어도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가정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그러므로 농사가 퍼져나간 길이 바로 언어의 길이었다는 것이 허드슨 박사의 결론이다.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해, 고려대 국문학과 정광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주목할 것은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의 수사(數詞) 네 개를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찾아냈습니다. 고구려어로 알려진 이 네 개의 수사가 일본어와 일치합니다. 민족의 언어의 계통을 찾는데 가장 중요한 증거가 수사의 위치인데, 고구려와 일본의 수사가 일치한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겁니다.”(KBS 스페셜 <위대한 여정 한국어, 제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