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후쿠오카

일본 여행 스텝 4

trytobe 2009. 10. 31. 22:43

새로운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의 하나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처음 만들었을 땐  잘 되는데

다음에 다시 만들면 영 엉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레시피에 대한 겸손을 잊고 교만해 진 탓 일지..                              

 

3일간의 여행을 끝낸, 마지막 날의 나 - '이보다 더 엉망일 수는 없다'로

여행객의 겸손을 잃은 댓가를 치른다.  흑흑...


스텝 4 - 마지막 날

짐이 많다.  이러면 곤란한데...

제빵틀과 책에 신제품 맥주까지  잔뜩 든 캐리어는 끄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밖에는 비가..비가 내리고 있다. ( 후쿠오카야~섭섭한 건 알겠는데 울 것까진 없잖니...ㅜ.ㅜ)

하카타 역, 공항가는 버스 승강장의 가장 가까운 코인 락커에 캐리어를 밀어 넣고

텐진 니시테츠 전철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난 잘 물어 보았다!!  문제는 출근 시간의 그 혼잡함 속에서 내가 그 역을 지나쳤다는 거다.

비가 오는 아침이다. 아침도 안 먹었다만,

그래도 내겐 '산큐패스'가 있다.  요씨~  다시 타면 된다. 

건너가서 다시 버스 타고 이번엔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세 정거장 쯤 되서 내렸는데 역이 어딘지 보이지가 않는다.

묻고, 또 묻고, .. 왜 다들 텐진 니시테츠 역이 그냥 턱하니 나타 나듯이 얘기 하는걸까..

내가 탄 버스가 다른가.. 아 비도 오는데... 어쨓든 전철역으로 들어 왔다.

자동판매기에서 390엔을 넣고 표를 뽑는다. - (사실 역무원이 나와서 해 주었다.)

다지이후 가는 전철은 3층이라고 알려 준다.  마침 전철이 정차해 있어서 탔는데...

굉장히 예의바른 전철이다. (초록색 보통열차닷!)  모든 정거장을 서는 건 기본,

급행 열차 지나 갈 때마다 차장이 내려서 수신호에 인사꺼정~. 일부러 이런 열차 타기도 쉽지 않다.

승객도 거의 없는 전철 안에서 환승역까지 가는 긴 시간, 마침내 후쯔카이츠 역이다.

내가 읽은 여행기는 내려서 바로 타는 거라고 나오던데 여기서 '바로'의 의미는,

- 바로 계단을 올라가서 다자이후행 플랫폼을 찾아서 타는-의 의미였다.


두 정거장쯤 지나 다지이후 역에 도착했다.

이번엔 이 동네의 배후(?)를 돌지 않으려고 눈치 좀 살핀다.

'음~ 사람들이 저쪽에서 많이 나오는군... 그렇담 저쪽이 입구?..!'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 쪽으로 걸어간다.  또 당했다..ㅜ.ㅜ

상점도 양쪽에 쭉 늘어서 있더구만... 그쪽은 관광버스 주차장이었닷!!!!

'뭐~누가 알았남 칫~' 혼자 벌쭘하지만 다시 돌아 나간다.

은행도 있다... 은행에서 나오는 아주머니에게 입구를 여쭤본다.

내가 걸어 들어온 길의 반대편으로 쭉 올라가는 거란다.

"혼자 왔냐?" "많이 구경했냐?" "한국이라면 나도 부산에 가 본적 있다"

비오는  보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 그래, 내가 이 길로 잘못 들어오지 않았으면

이 아주머니와  일본어로 지금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없었겠지..' -

"간밧떼네~"하며 웃으며 멀어지는 아줌마...

오바상~ 지금 그 말씀,  제 모드 전환버튼 누르신거예요..

우울 모드에서 으샤 모드로 변환한다. ....  감사 합니다.  



 봄비 속의 다자이후는, 기모노 곱게 입고 벚꽃 아래 선 여인처럼 보인다.



  수묵화의 그 아련한 번짐처럼,  비는 여행의 느낌을 좀더 농밀하게 만드는 장치가 분명하다.



"일본의 정직함은 술값에서도 나타난다. 비싼 술은 맛있고, 싼 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던 사람이 생각난다.  그에게 후쿠오카 얘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사실 뭔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은 것 같다.... 지금 생각엔...)

누군가가 지나간 길, 지나간 곳...관광지는 대부분 그런 스침의 기억들을 공유한다.

너의 그곳과 나의 그곳이 다르겠지만, 우리의 그곳, 접점을 함께 얘기해 보고 싶어진다.

그나저나  신사의 저 술은 어떤 맛일까...

 '따끈하게 데운 정종 한잔'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술 한잔이 그리워 지는 풍경이다.



100엔을 내고 '뽑기'를 했다.  오미쿠지.  앗싸~ 대길이다....

난 여기다 묶지 말고 잘 갖고 있어야 겠다. .. 그래도 점쾌는 맞아 주겠지..



여긴 늘 뭔가를 하는 모양이다. 일종의 퍼포먼스는 아닌 것 같고...실제로 뭔가

제를 올리는 모양이다. 



우리의 것과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그러기에 더 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일본엔

많은 것 같다. 직선과의 비례를 양보 하지 않으며, 황금분활 마저 무시하는  듯한

저 지붕의 비대칭은, 기모노의 과장된 오비처럼 느껴진다.



학문의 신을 모신 곳이라니 내가 '계속 공부할 수 있기를, 호기심을 잃지 않기를,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을 지금처럼  기쁨으로 느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다자이후 상점가를 내려 오면서 매화병을  '두개' 사 먹었다. 

"두개만 주세요, 얼만가요?" 물어보는 나 - .

전 같으면 계속 지폐만 사용 했을텐데, 푼돈 쓰면서 동전으로도 계산 잘하는 내가 기특하다.(별걸 ㅜ.ㅜ)


역에서 조금 기다리다 텐진으로 갔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  스시를 먹어줘야 한다.

유명하다는 스시집을 두군데나 알아 왔는데... 흑흑~ 찾을 수가 없다.

인큐브와 미쯔비시 백화점과  뭔 쇼핑센타만 잔뜩 있다.

'나... 쇼핑을 왕 좋아 하지만 말야... 지금 가방 꽉 차서 들지도 못하걸랑...

그리고... 그리고... 지난 번 입국 때 벌금 물어서 뭘 사기도 겁 난단다..흑흑..'

주문 외우고 다니니 사는거라곤 고작 약간의 화장품과 문구류..


무적의 산큐패스 이용해서  버스 타고 케널시티로 간다.

거기서 그냥 1층에 있는 일본색 짙은 식당에 들어가서 정식을 먹었다.

스시도 못 먹는데 조금 비싼 점심 - 먹어준다.  맛.. 시장이 반찬이다!! -.-


일본은 땅도 좁다면서 쇼핑센타들은 왜 이렇게 크고 복잡하게 지어 놓은건지..

3시까지는 공항을 가려고 하는지라 급하게 4층에 있다는 스포츠 매장을 갔다.

드디어... '미즈노 축구화 265'를 샀다. ..... 아니 샀다고 생각했다.

내가 '미즈노 축구화 265'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끝내고,

사무실 출근해서, 부탁했던 직원에게 건네줄 때...그- 때- 알았다!!!!

265 /260 --왼발, 오른 발 사이즈가 틀리다!!!

직원이 박스채로 가져 와서 사이즈 분명 확인하고 쇼핑백에 담았는데 왜... 왜..................

일본의 최신 트랜드는 각기 다른 사이즈로 신는 것???

프로그램 최대의 미션을 최대의 버그로 마무리 한 나. 바보.......

( 유독 그 비싼 신발 영수증만 없어졌다. 영수증도 없으니... 포/기/했/다 T .T)


아직도 그 직원, 커피가 마시고 싶다던가, 자신이 뭔가 불리해 지면,

'미ㅈ...'   외친다.  나.... 바로 다운이다.!! 노예로 전락했다.



분수쇼가 끝나고 나서 하는 공연을 운좋게 잠깐 구경한다.

하텐에서 본 공연보다 훨씬 즐겁게 웃으며 볼 수 있었던 건 '웃어 주어야 하는데~'의

부담이 없었기 때문일거다.   아츠이~ 아츠이~~ㅋㅋ 재미있었다.


케널시티에서 하카타 역까지 버스를 타려면

버스 승강장을 찾기 위한 세심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있는대로  헤매다 택시 타기 일보 직전에 버스 승강장을 찾았다.

멀고... 표지판도 작다.  산큐패스.. 끝까지 쓰려는 의지가 가져온  인간 승리다. -.-


버스를 타고 공항을 간다.

지하도를 건너 국제선 청사로 가는 셔틀을 타야 하는데,

계..단..이..닷!  이 나라는 가는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은가 보다.

캐리어에, 숄더에 몇개나 되는 쇼핑백을 바리 바리 들고 계단을 내려간다. 헥헥~

단체 여행객들은 벌써 보딩 수속 중이다.

가이드가 척척 도와주는 그들이 살짝 부러워 질라 한다.

그런데... 수화물로 부치지 않은 내 짐 하나가 문제가 된단다.

캐널시티에서 산 도자기 병 - "와레모노라 가지고 타야 한다. 속은 비었다."

힘들게 설명해서 통과한다.  조금 지친다.

입국장 바로 들어 가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토마토 쥬스 마시며 한숨 돌린다.


   이제 가는구나..

   나흘 간의 여행이  머리 속에서 슬라이드 화면처럼 넘겨 지는데,

   조금은 감상적인  슬픔이 모래처럼 껄끄럽다.

   이 여행의 기록을 어쩜 나는 오랫동안 쓰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여행기를 마치는 날, 어쩌면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후쿠오카'를 떠나 온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


프로그램이 끝나고 모니터는 검은 화면으로 바꼈다.  페이드 아웃~

달라 진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지 못하는 낯설은 게이머만 그 앞에 앉아있다.